■ ‘방학동 화재’ 안타까운 사연들
7개월 딸 안고 4층서 몸던진 父
“알뜰살뜰해 같은 단지서 확장”
10층선 가족 대피시키고 숨져
“얼마전 美유학 마치고 돌아와”

26일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등이 전날 화재로 주민 2명이 사망한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에서 합동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백동현 기자
“둘째 딸이 생기면서 큰 집으로 옮긴다고, 참 다행이라고 좋아했던 부부예요. 두 딸도 너무 귀여웠는데, 어떻게 애먼 사람이 죽었나….”
지난 25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4층 가족 가장 박모(33) 씨를 회상하던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 A 씨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했다. 주민 등에 따르면 박 씨 부부는 지난 6월 둘째 딸이 태어나자마자 같은 단지 내 18평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30평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A 씨는 박 씨 부부를 ‘알뜰살뜰했던 부부’로 기억했다. A 씨는 “아내가 한여름에 만삭인 채로 수박을 사들고 부동산을 오가곤 했다”며 “보통 아이가 있으면 이사 올 때 청소 업체 시켜서 청소를 하는데, 돈 아낀다며 아이 아빠하고 아내 오빠하고 집 청소를 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그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엄청 예뻐했고 사이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같은 아파트 주민 김모(62) 씨 또한 “아이 엄마랑 아이들이 참 예뻤다”며 “만날 때마다 넓은 집에 이사 왔다고 좋아했다”고 안타까워했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25일 오전 4시 57분쯤 23층인 이 아파트 3층에서 불이 났다는 첫 신고가 접수됐다. 불길은 약 3시간 43분 만인 오전 8시 40분쯤 완진됐지만, 이 과정에서 박 씨를 포함한 30대 남성 2명이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두 살배기 첫째 딸을 지상에 있던 재활용쓰레기 포대 더미 위로 던진 후 7개월 둘째 딸을 안고 뛰어내렸다. 마지막으로 부인 정모(34) 씨가 뛰어내렸다. 박 씨는 추락 직후 심정지 상태로 발견,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부인은 어깨 등을 다쳤으나 현재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며, 두 아이 또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당시 2살 딸을 안전하게 1층으로 던진 뒤 7개월 딸을 안고 뛰어내리다 사망한 아버지 박모(33) 씨 가족이 살던 4층 복도가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김린아 기자
또 다른 사망자는 10층에 거주하던 임모(38) 씨로 함께 살던 70대 부모와 남동생을 먼저 탈출시킨 뒤 마지막으로 탈출하려다 11층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전 마련된 임 씨의 빈소에서 아버지는 “월급 타면 월급날마다 식사도 했었고, 계절마다 옷도 사주는 너무 착한 아들이었다”며 눈물지었다. 그는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가족들 다 살리고 너만 죽으면 어떡하냐”며 오열하기도 했다. 임 씨의 고모들은 “미국에서 유학 마치고 돌아와 있는 상황에서 사고가 난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이날 오전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3층 내부의 합동 현장 감식과 사망자들의 부검을 실시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방화 등 범죄 혐의점은 없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http://v.daum.net/v/2023122611571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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