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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v.daum.net/v/20220629043036067
신은별 특파원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③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쥔다면, 비극은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의 승리는 '대만을 침공해도 좋다'는 사인을 중국에게 줄 거예요. 과연 거기서 끝날까요? 한국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겁니다."
◇"한국은 우크라 전쟁을 무겁게 봐야 한다"
올렉시 하란 키이우 모힐라 우크라이나 국립대학 아카데미 교수는 25일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한국일보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의 승전이 세계 패권을 노리는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들에 "갈등 관계의 국가를 무력으로 공격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군사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북한과 대치 중인 데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이 이번 전쟁을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핵심 메시지다.
하란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의미를 북한이 오독할 수 있다는 점도 한국이 경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27년 전 '안전 보장을 약속한다'는 러시아 말을 믿고 핵 무기를 포기했다"며 "그 선택의 결과는 핵 없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당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핵 보유국이 되려는 북한은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핵을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 체제 보장을 위해서라도 핵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란 교수는 "러시아가 이긴다면, 우월한 군사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류의 전쟁이 증가할 것"이라며 "푸틴발 '나쁜 신호'가 번지며 전쟁이 도미노처럼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면,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그런데도 한국은 왜 일본과 달리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 강력 동참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여러 차례 묻기도 했다.
비교정치학을 가르치는 하란 교수는 전쟁 전에 학자로서 한반도 상황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우크라이나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며 "한국 땅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그건 북한이 함부로 한국을 공격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한국엔 미국이라는 강력한 동맹국이 있지만, 우크라이나엔 없다는 게 이번 전쟁을 계기로 우리가 깨달은 문제"라며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안전하게 해 줄 동맹을 갖기 위해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침공의 명분이 된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 추진이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득이 될 것이라고 본다는 뜻이다.
◇우크라 여론, "러에 양보 없어야"... 전쟁 장기화 신호
하란 교수는 싱크탱크 '일코 쿠체리프' 재단 소속으로 '전쟁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여론 추이'를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재단은 올해 2월과 러시아의 침공 3개월째인 5월에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7곳과 중부지역 4곳에 사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각각 실시했다.(격전지인 동부지역의 민심은 누락된 조사상 한계가 있다고 하란 교수는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해야 한다"는 응답은 3개월 사이에 72%에서 89%로 17%포인트 증가했고, "어떤 지역 연합체에도 가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은 19%에서 5%로 14%포인트 줄었다.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담보할 최선의 방안'을 물은 질문에 "나토 가입"을 꼽은 응답자는 68.5%에서 73.8%로 5.3%포인트 늘었고, "(나토 같은 지역 방위기구에 속하지 않은) 비동맹 상태 유지"를 지지한 사람은 18.4%에서 2.6%로 15.8%포인트 감소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추진하는 EU와 나토 가입을 두고 전쟁 전엔 "러시아를 자극할 뿐 실익이 없다"는 여론이 상당했지만, 압도적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하란 교수는 "이 같은 여론은 전쟁 피해가 누적되더라도 젤렌스키 정권이 나토와 EU 가입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전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놓고도 민심의 변화가 뚜렷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꼽은 우크라이나인은 61%에서 96%로 치솟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이라는 응답은 25%에서 5%로 줄었다. 하란 교수는 "'계속 싸워야 한다'고 지지하는 여론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뒤를 받쳐 주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영토 등에 대해) 어떤 양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도 43%에서 78%로 늘어났다.
이 같은 여론엔 그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강경 노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전쟁이 마냥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 역시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는 터다. 문제는 전쟁을 오래 끌수록 러시아보다는 국방력이 열세인 우크라이나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을 계속 해야 할까. 하란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푸틴은 오늘도 '영토를 더, 더, 확장하자'고 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부의) '돈바스 지역 전체'를 차지할 때까지 그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